‘커뮤니티엑스’는 서로 다른 커뮤니티들의 경계에서 개인과 사회의 긍정적 변화를 만들어나가고자 하는 무브먼트이자 커뮤니티입니다. **<밀레니얼의 반격(2019년 출간)>**과 **<커뮤니티 자본론(2023년 출간 예정)>**을 쓴 전정환이 선언하고 실천하는 일과 삶의 기준점이며 사업자명이기도 합니다.

 

홈페이지 : https://commx.notion.site/

 

커뮤니티엑스 웨이 CommunityX Way

“Connecting Communities and Co-creating Values”

커뮤니티엑스 웨이는 기존의 커뮤니티들의 주변과 경계로부터 ‘서로 다른 커뮤니티들을 연결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실천 방법론’입니다.

 

왜 지금 ‘커뮤니티엑스 웨이’인가?

우리 사회 곳곳에는 이미 많은 커뮤니티가 존재합니다. 오래전 농경사회와 같이 변화가 빠르지 않던 시대에는 한 번 만들어진 커뮤니티가 비교적 오래 유지됐습니다. 한 사람이 평생 살아가면서 접하는 커뮤니티들도 지금처럼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변화가 빠른 시대에는 다릅니다. 커뮤니티는 빠르게 생겨나고 성장하고 소멸합니다. 한 사람이 사는 동안 수많은 커뮤니티를 접하게 되고 그 커뮤니티의 생성과 성장, 쇠퇴와 소멸에 참여하게 됩니다. 한번 생긴 커뮤니티는 모두 좋은 것일까요? 항상 그것을 유지하고 보존해야만 하는 것일까요? 상황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생태계에서 영원한 존재는 없습니다. 탄생한 모든 것은 언젠가는 소멸합니다. 생성 초기에는 다양성을 융합하고 사회에 좋은 가치를 주었던 커뮤니티가 시간이 지날수록 폐쇄적인 이익집단으로 변화하기도 합니다. 커뮤니티 간에 대립과 갈등으로 치닫는 경우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이제는 새로운 커뮤니티가 탄생해서 기존 커뮤니티까지 변화를 이루어낼 때입니다.

‘나’는 다양한 ‘커뮤니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따라서, 나를 둘러싼 커뮤니티를 변화시키고 커뮤니티를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은 나 자신의 변화를 능동적으로 만들어나갈 수 있다는 것과 같습니다. 기존의 틀에 갇히지 않고 경계를 넘어서 끊임없이 능동적으로 다양한 커뮤니티와 관계를 맺음으로써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커뮤니티엑스 웨이는 다양한 영역을 융합하여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 뿐 아니라, 지역의 변화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지역에는 그곳에서 태어나 살아온 사람들, 리턴한 사람들, 이주민 등 다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역의 미래를 만들어나가는데 있어 다양한 커뮤니티의 일원들이 경계에서 만나 공감하고 변화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이렇게 지역과 세대의 경계를 넘어서서 새로운 커뮤니티가 탄생하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는 더 나은 사회로 변화하고 개인은 더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Posted by draw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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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한메일Express PM을 맡고 있던 2007년에 작성한 글입니다.

이때까지는 크게 이슈가 되지 않았으나, 현재는 인터넷 상의 '잊혀질 권리'는 중요한 주제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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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나와 메일, 그리고 '평생 쓴다'는 것에 대한 단상.

원글 : http://daummail.tistory.com/8 (2007년6월4일)

 

내 기억은 제한적이다. 1년, 2년, 3년, 그리고 10년이 지나면 모든 것은 앞뒤가 섞이며 밀가루 반죽과 같이 된다. 그러나 메일은 그 시간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진실의 이면들을 뒤에 품은채 표지처럼 글로 남아 있다. 그것은 관계의 기록이며, 시간의 기록이다.

1997년 나는 처음 한메일을 썼다(그때는 나는 다음 직원이 아니었다. 나는 작년 11월에 다음에 입사했다). 그때는 아마도 "평생 쓰는 무료 이메일"이라는 슬로건을 "평생 쓰는" 보다는 "평생 무료"의 의미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지금 나의 메일함을 보면 1999년부터 메일이 남아 있다(합이 2500통 정도가 된다). 그때는 용량이 적었기에 눈물을 머금고 이전의 메일들을 주기적으로 지워줘야 했기에 1997, 1998년의 메일은 사라진 것이다.

그런데, 10년의 지난 지금, 메일 서비스들은 모두 대용량 내지 무제한으로 가고 있다. 이 용량 경쟁도 언젠가는 거의 모든 메일 서비스들이 무제한 용량을 제공하면서 평정되게 될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이제 나는 내 메일을 일부러 삭제하지 않는 한 모든 메일들이 남아 있게 될 것이다.

이것은 어떤 의미를 띄는 걸까? 우리는 그동안 생각해보지 못한 새로운 질문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40년 뒤 나는 아마 생업에서 은퇴하여 여생을 자연 속에서 책이나 읽으면서 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때 나는 한메일에서 50년 전 메일들을 뒤적이면서 하나씩 기억들을 되새기게 될 것이다. 그리고 50년 전 친구가 보냈던 메일에 '답장'하기 버튼을 누르고 싶은 충동을 느끼면서 노스탤지어에 시달리게 될 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그 친구는 그때쯤이면 죽고 없을 지도 모를 일이니까.

2100년 즈음에는 나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 수명이 130세까지 늘어난다고 하니 조금 더 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가 신이나 기계인간이 되지 않는 한 언젠가는 나 뿐 아니라 오늘날 한메일에 로그인한 모든 사용자들은 더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이럴 때 "평생 쓰는 이메일"이라는 건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되는 걸까? 사람은 없는데 서비스 어딘가에 그 사람의 이메일이 보관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 이메일들은 세상에 존재하는 걸까, 존재하지 않는 걸까? 이 메일이 있는 세상은 '이세상'일까 '저세상'일까?

사람이 죽으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가 지닌 소지품들은 모두 가족에게 남겨지게 된다. 우리는 유명한 작가가 사적으로 주고 받은 편지들이 그의 사후에 가족에게 상속되어 출판되거나 경매로 팔려나간 경우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런데, 종이로 된 편지가 아닌, 아이디와 암호를 넣고 로그인해야 하는 이메일의 경우는 어떨까? 유명인이 죽고 난 후 그의 이메일을 가족이 유산으로서 상속받아 권리를 주장할 수 있을까? 논란의 여지가 있을지 모르지만 내 생각에는 그럴 권리는 아마도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만일 돈을 노린 이메일 도굴꾼이 망자의 이메일을 해킹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 행위는 적발하거나 처벌해야 할까?

어쩌면 미래에 새로운 보험 상품이 등장할 지도 모르겠다. 내가 죽거들랑 내가 썼던 모든 이메일을 자동으로 삭제해주는 보험 상품 말이다.

나는 상상해 본다. 죽은자들의 이메일들만을 담고 있는 서버들이 모인 서버실을. 온도 조절기가 갖추어지고 랙에 서버들이 나열된 모습은 아마도 납골당의 모습과 유사하지 않을까 싶다. 납골당에 뼈를 보관하는게 좋은지 아니면 이곳의 망자의 서버에 나의 이메일을 보관하는게 좋을지? 이 Dead E-mailer's Society를 위한 정기적인 합동 추모제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평생 쓰는 무료 이메일", 대용량에 이어 무제한 용량으로... 우리는 지금 이순간 우리의 어떤 한계를 넘어서고 있는지 알고 있는 걸까. 철저하게 사적이면서도 관계를 저장하는 메일... 무제한, 소멸되지 않는, 기억의 깃발들, .......  

Posted by draw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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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8 한예종 예술경영 전정환 / 문화이론 수업 발표

미셸 드 세르토 Michel de Certeau (1925~86)

 

 

1925년 샹베리에서 태어났다. 1950년 예수회에 가입했고, 1956년 성직자로 임명되었으며, 1960년 소로본 대학에서 종교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근대 초기 종교사의 전문가가 되었으며 신비주의에 관한 연구를 시작했다. 그리고 68운동을 겪으면서 진로를 바꾸었다. 그의 저서는 이질적인 이슈와 독자를 대상으로 현대 사회와 이론에 관한 문제와 이슈를 다루기  시작했다. 자크 라캉의 프로이트 학교가 창립될 때부터 폐교될 때까지 회원이었으며, 그의 저술의 다양성은 그의 작업의 산물이자 비결이다. 1978~1984년에 캘리포니아에서 상근으로 일을 했다.

 

 

 

일상 생활의 실천 The Practice of Everyday Life

 

드 세르토의 주요 관심은 '일상 생활의 창조적 실천성'이다. 그것은 인간이 사회 구조에 매몰되지 않을 가능성을 찾는다는 점에서 계몽주의나 자유주의의 전통에 섰다고 해석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전통과 분명히 구별되는 새로운 시각을 연다. 그것은 인간의 가능성을 이성이나 자유 의지 등에서 찾지 않고 바로 '일상 생활의 창조성'에서 찾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푸코와도 구분된다. 판옵티콘에 훈육되고 종속되는 삶이 아니라, 주어진 판옵티콘을 정치적, 제도적인 차원이 아닌 '아주 일상적인 차원'에서 재전유, 왜곡, 변형, 재가공하면서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간다는 것이다. 그동안 큰 담론 속에서 배제되었던 일상 생활의 차원을 부각시켰다는 점, 그리고 그것의 저항성만이 아니라 적극적 창조성을 제시했다는 점에 드 세르토의 의의가 있다.”

 

- 판옵티콘(panopticon) : '모두'를 뜻하는 'pan' '본다'는 의미의 'opticon'을 합성한 말로, 죄수를 효과적으로 감시할 목적으로 만든 원형 감옥제레미 벤담이 설계.

 

- 세르토는 '소비자 consumers' 대신에 '이용자 users'라는 용어를 사용했으며 생산자와 소비자의 구분을 넘어서고자 했으며, 이용 과정에 감춰져 있는 이차적 생산에 주목했다. 원주민 인디언들의 스페인 문화 이용의 경우.

- 세르토는 연구의 주제인 발언행위의 관점을 취함으로써 발언행위를 특권화한다. 발언행위의 특징을 산책과 요리 같은 다른 많은 실천들에서 발견했다.

 

- 푸코의 권력의 미시 물리학에서 말하듯이 감시의 망이 미세한 어디로나 확장하고 명확해지고 있는 것이라면, 시급한 것은 전체 사회가 그에 환원되지 않을 방법을 찾아내는 것. 이용자들의 전술이 이상적인 극한까지 발전한다면, 감시에 대항하는 망을 이루게 된다는 것이 이 책의 주제.

- ‘전략은 의지와 권력의 주체가 환경에서 분리될 수 있을 때 가능해지는 힘 관계의 계산을 의미한다. ‘전술고유 영역에 의존할 수 없고 가시적 총체성으로서 타자와의 구분선에도 의존할 수 없는 계산을 의미한다. 전술의 장소는 타자에 속해 있고, 은밀히 침투시킨다.

- 많은 일상의 실천(대화, 독서, 산책, 쇼핑, 요리 등)은 성격상 전술적이다. 많은 작용 방식ways of operation’이 있다. – 교묘한 트릭, 사냥꾼의 교활함, 즐거운 발견, 시적인 것 등

 

- 수사학 분야가 전술의 유형들 사이를 구분할 수 있는 모델을 제공한다.

 


 

도시 속에서 걷기 Walking in the City
The Practice of Everyday Life - Part III: Spatial Practices 

 

 

참고 : WTC에서 내려다본 맨해튼

 

세계 무역 센터 110층에서 내려다본 맨해튼.

마천루의 요동이 시선에 사로잡혀 직물구조로 변한다.

순간순간 이전에 성취한 것을 바로 던져버리고, 현재만으로 스스로를 만들어가는 도시.

조망하는 자는 이 도시 속에서 폭발하는 우주를 읽을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글자들로 쓰여진, 소비와 생산의 과잉에 대한 거대한 수사.

 

“the tallest letters in the world compose a gigantic rhetoric of excess
in both expenditure and production.”

 

 

훔쳐보는 자와 걷는 자 Voyeurs or walkers

 

인간 텍스트들을 전체화totalizing하는 쾌락. 시점viewpoint이 되려는 욕망, 지식의 허구. 르네상스때 원경투시법에서 시작해서, 기술적 발전은 모든 것을 보는 권력을 조직해내었다. 파노라마-도시, 광대한 직물구조는 실천에 대한 망각과 오해를 통해서만 가능한 그림이다.

도시 아래는 가시성이 멈추는 일상 생활자들이 살아가는 곳이다. 유동적이고 서로 얽히는 글쓰기의 그물은 저자도 구경꾼도 없는, 궤적의 부서진 조각들과 공간의 변경으로 만들어지는 다중의 겹쳐진 이야기를 꾸민다.  세르토는 기하학적’, ‘지리학적공간과는 전혀 다른 공간 실천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주하는, 혹은 은유적인 도시는 계획되고 읽을 수 있는 도시라는 명료한 텍스트 속으로 살며시 들어간다.


“A migrational, or metaphorical, city thus slips into the clear text of the planned and readable city.”

 

1.  도시의 개념에서 도시적 실천으로
From the concept of the city to urban practices

 

개념 도시 conceptual city

 

에라스무스 , “도시는 거대한 수도원”. 조망적 시선과 예견적 시각은 불투명한 과거와 불확실한 미래를 수면에 띄워 올려 처리할 수 있다는 이중적 투사를 구성했다.
도시적 사실urban fact은 도시 계획적 이성에 종속된 통일체로 다룰 수 있다고 가정되었다. 도시를 계획한다는 것은 현실의 복수성plurality에 대한 사고 방식을 효과적으로 만드는 것, 도시를 분절하는 법을 알고 또 실제로 분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도시계획적 담론에 의해 건설된 도시는, 분류를 통해 차별화, 재배치하여 다룰 수 없는 모든 것들을 배제함으로써, 기능주의적 관리의 폐기물들’(비정상, 일탈, 질병, 죽음 등)을 만들어낸다. 발전은 계속 증가하는 폐기물들을 관리할 수 있는 범위로 끌어들여 질서의 그물을 촘촘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변형시키고자 한다. 그러나, 이윤 체계는 손실을 발생시킨다. 체계 밖에서는 숱한 비참함과 가난의 형태로, 체계 안에서는 숱한 폐기물의 형태로, 끊임없이 생산을 비용으로 바꾸었다.

도시의 합리화라는 전략적 담론 속에서, 기능주의적 조직화는 발전’(, 시간)을 특권화함으로써 도시를 가능케 하는 조건인 공간 자체를 망각하게 했다.

 


참고 :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는 이제 사라졌다. 하지만 40년 전 정부의 철거민 정책에 힘없이 떠밀려 왔던 세입자들은 그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개발의 그늘 아래 놓여 있다.”
오마이뉴스 - http://durl.me/6g76q6

 

도시적 실천 urban practices

 

개념 도시는 도시를 조직했던 절차와 함께 쇠퇴하고 있다. 우리는 발전 대신 파국을 얘기함으로써 특권을 유지하는 담론의 영역에 머무르는 대신, 도시 계획 체계가 관리했다고 생각했지만 살아남은 세균 같은 실천들, 즉 하나면서 다수인 실천들을 분석할 수 있다. 이들은 판옵틱 관리 속에서 제거되지 않고, 읽을 수는 없지만 안정된 전술에 따라 결합하여 일상적 규칙과 내밀한 창조성을 구성했다.

푸코의 권력 구조 분석은, 도제제, 보건, 법률, 군대, 노동 등에 있어, ‘세부 항목을 조직화하는 것만으로도 인간의 다양성을 훈육적사회로 바꿀 수 있는, 모든 일탈을 관리하고 차별화하고 분류하며 위계화할 수 있는 기제와 기술적 과정, 미시적 권력 수단들을 분석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훈육이 이루어지는 영역에서의 공간적 실천들이 훈육의 공간을 생산하는 이러한 장치들과 어떻게 상응하는가라는 문제가 있다. 집단주의적 관리 양식과 이를 재전유하는 개인의 양식 사이에서 빚어지는 갈등이라는 맥락에서 볼 때, 이 문제는 중요하다. 세르토는 이  연구에서, 훈육 영역 밖으로 나가 훈육을 피하려 하지도 않으면서 이처럼 다양한 형태로 저항하고 꾀를 쓰는 고집스런 절차를 추적하고자 한다. 이는 우리를 일상적 실천과 관련이 있는 공간의 이론으로 이끌 것이다.

 

2.  여유로운 걸음들의 합창 The chorus of idle footsteps

 

“The goddess can be recognized by her steps” Virgil, Aeneid, I, 405

걷기는 수로 셀 수 없다. 그 개미 떼 같은 움직임의 덩어리는 특이성singularities의 셀 수 없는 집합이며, 장소들을 엮어 직물처럼 짜내고 있다. 보행자의 움직임은 그 존재가 사실상 도시를 만들어 내는 실재 체계들가운데 하나를 형성한다. 지리학적 체계는 걸어가는 작용을 투사하여 무시간 속에 읽을 수 있는 그림표상으로 변형시키기는 하나, 실재하는 지나가는 행위 자체를 망각시킨다

 


참고: 실시간교통-다음지도(), 서울 Timelapse–Mr.Koo http://vimeo.com/49360706 ()

 

보행자의 발언 행위 Pedestrian speech acts

 

걷기와 말하기의 비교를 통해, 걷기를 공간에서의 언술행위enunication로 정의할 수 있다.

걷기의 기본적 언술적기능은 다음과 같다.
1)
걷기는 걷는 사람이 공간배치 topological 체계를 전유appropriate하는 과정이다
. (말하는 자가 언어 체계를 전유하듯이)
2)
걷기는 장소의 공간적 실현이다. (말하는 행위가 언어 체계의 청각적 실현이듯이)
3)
걷기는 구분된 위치들 간의 관계, 다시 말해 움직임의 형태를 띤 실용적 계약이다. (구어 발언 행위가 상대방을 설정하고’, 말로 소통하는 사람들 사이의 계약을 하듯이)

 

보행자의 발언 행위는 다음 특성들 때문에 공간적 체계와 구분된다.
1) the present :
공간적 질서가 가능성(다닐 수 있는 장소)과 금지(다닐 수 없는 장벽)의 앙상블을 조직한다면, 보행자는 이러한 가능성들의 일부를 나타나게 하고 존재하게 한다. 보행자는 가능성들을 변형시키거나, 다른 가능성들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걷기에서 가로지르기, 이리저리 표류하기, 혹은 즉흥적인 행위. 구축된 질서가 고정시킨 가능성들 가운데 몇몇만을 실현하기도 하고(이 곳으로만 가고 저 곳으로는 안 가는 경우), 가능성들의 수(지름길이나 우회로를 창조함으로써)와 금지의 수(통과하는 것으로 간주된 길을 스스로 금지 구역으로 설정하는 경우)를 증대시키기도 한다.
2) the discrete :
공간적 언어의 기표들 가운데서 선택하거나 자신의 이용법으로 대체함으로써 분별을 만들어낸다.
3) the phatic :
보행자는 그의 위치와 관련하여 가까운 곳과 먼 곳, 여기와 저기를 구성한다. 이런 위상(여기와 저기)와 관련된 타자를 끌어들임으로써 장소들 간의 접합적이고 분리적인 분절을 형성하는 기능이 있다.  걷기 행위 속에는 친교적phatic’ 측면이 있다. 길을 따라가기도 하고 누구에 앞서 가기도 하는 걷는 행위는 친교적 표현을 만든다.

 

걷기의 수사학 Walking rhetorics

 

말의 비유적 표현과 걷기의 비유적 표현 사이에는 상동성이 있을 것이다. 공간적 실천을 설명하는데 중요한 문체적 비유법은 제유법synecdoche와 연사생략 asyndeton이다. 제유는 부분으로 전체를 대표하는 것이다. 하나의 오두막집이나 언덕도 공원을 대신할 수 있다. 이는 하나의 공간요소를 확장하여 더 큰 것의 위치를 차지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연사생략은 한 문장이나 문장 사이에 있는 접속자나 부사 같은 연계어를 생략하는 것이다. 음절탈락을 통해 '더 작은 것'을 창출하고 공간적 연속체에 틈을 벌리며, 선택된 일부만을 붙든다. 제유는 전체를 조각들로 대체하고, 연사생략은 접속하는 것과 연속하는 것을 제거함으로써 각 조각들을 분리시킨다. 이러한 걷기의 수사학을 통해 (병렬적 인용으로 구성된) 유비적 analogical 유형과 (, 착오, 암시로 만들어지는) 생략적 elliptical 유형이라는 기본적인 공간적 진술이 창출된다.

움직들의 수사학적 이동은 도시 계획의 분석적이고 수미 일관한 고유 의미를 밀어내고 대체해 버린다. 이는 대중들에 의해 생산된 의미의 방황이다. 이 대중들은 도시의 어떤 부분은 사라지게 하고 다른 부분은 과장함으로써 도시를 왜곡하고, 잘게 부수어 버리며, 그 완고한 질서로부터 도시를 빼돌린다.

 

3.  신화들 : ‘이동하게 하는 Myths : what “makes things go”

 

움직임의 비유들(제유, 연사생략 등)무의식의 상징적 질서담론에서 드러나는 전형적 과정들의 특징을 나타낸다. ‘담론사이의 유사성은 둘 다 문체적 절차를 사용한다는 것이다(‘꿈꾸기특유의 형상화 과정에는 응축과 치환이 있다). 보행 과정을 언어적 형성 과정에 비유한 것처럼, 보행 과정을 꿈의 형상화에 비유할 수 있다. ‘무엇이, 공간적 실천에 있어, 꿈꿔 온 장소와 분리할 수 없는가를 발견할 수 있다. 걷는다는 것은 장소를 잃는 무한한 과정이며, 고유한 것을 찾아가는 무한한 과정이다.

 

이름과 상징 Names and Symbols

 

장소가 제공하는 정체성은 이름으로 불린 상징이다. 공간적 실천은 고유명사를 조작함으로써 부재를 즐긴다. 걷기의 방향(sense)과 말의 의미(sense) 사이의 관계는 두가지 분명히 상반되는 움직임, 즉 하나는 외향적인(걷는다는 것은 밖으로 나간다는 것), 다른 하나는 내향적인 움직임(기표의 안정성 아래에서의 유동성)을 설정한다. 고유명사는 친밀한 의미저장소를 만들어낸다. 고유명사는 의미 있게 만든다.’ 고유명사는 움직임의 추동력이 된다. 고유명사 장소에 비장소를 만든다. , 고유명사는 장소를 통로로 바꾼다. 별 광장, 콩코드 광장, 어시장 광장 등의 이름들은 여정을 이끄는 별들이다. 고유 명사들은 행위와 걸음을 연결하고 의미와 방향을 열면서, 그 일차적 역할을 비우고 닳아 없애는 이름 그 자체로 작용한다. 의미의 남겨진 유물들, 아무것도 아닌, 혹은 거의 아무것도 아닌 사물들이 보행자들의 걸음을 상징화하고 방향을 이끈다.

이 같은 상징화의 핵심 속에서 공간적 실천과 의미화 실천을 관계짓는 세 가지 구분된(그러나 연관된) 기능이 성립된다.
첫째, 믿을 만한 것 : 공간적 전유화를 승인하는’(가능케 하거나 보증하는) ,
둘째, 기억할 만한 것 : 공간적 전유 과정에서 침묵해 있고 깊숙히 박혀 있는 기억으로부터 -반복되는(혹은 회상되는) ,
셋째, 원초적인 것 : 공간적 전유 안에서 구조화되고 유아 때의 연원으로부터 꾸준히 넘어오는 것이다.

 

믿을 만한 것과 기억할 만한 것 : 거주할 만함
Credible things and memorable things : habitability

 

사람들을 믿게 하는 담론은, 명백한 패러독스에 의해, 사람들에게 믿으라고 강요한 바로 그것을 빼앗아 버리거나 그것이 약속한 바를 결코 전달해주지 않는다. 이런 담론은 빈 것을 위한 공간을 만들고 한정된 장소들의 체계 안에서 유희를 허용하고’, 유희공간에서의 생산을 승인한다.’ 이런 담론은 장소를 거주할 만한 곳으로 만든다. 이런 점에서 세르토는 그런 담론을 지방 당국local authority’라고 부른다. 지방 당국은 기능주의적 전체주의 체계의 틈이다.

이야기와 전설이 뿌리 뽑히면 도시에서는 상징 질서가 중단된다.’ 나 자신의 집을 빼 놓고는 어떤 특별한 장소도 없게 되며, ‘더 이상 믿을 것이 없는 장소들만이 있게 된다. 걸어다니기와 여행은, 일상에서 벗어나 나갔다가 돌아오는 행위, 즉 오늘날의 장소에는 없지만 과거에는 쉽게 접할 수 있었던 전설 덩어리를 대체하고 있다. 그것은 꿈이나 보행 수사학처럼 응축과 치환의 효과라는 이중 성격을 갖는 소설이다. 이러한 의미화 실천은 공간을 창조하는 행위로서 매우 중요하다. 이 실천의 내용은 계시적인 것으로 남아 있다. 장소에 관한 이야기들은 임시변통의 것들이다. 잃어버린 이야기들이나 불투명한 행위들과 얽힌 이야기를 꾸미는 말의 유품들은, 그들 사이의 관계는 고려되지도 않은 꼴라주 속에 같이 높여지며, 그런 이유로 상징적인 온전함을 형성한다.

이야기가 열어 놓는 확산의 과정 때문에 이야기는 소문과 다르다. 소문은 항상 명령적이고, 사람들에게 뭔가를 믿게 함으로써 질서를 강화하는 통상적 움직임의 창조자이다. 이야기는 가지를 늘리지만, 소문은 전체화한다. 이야기는 사적으로 되며 이웃, 가족, 혹은 개인 속으로 가라앉는 반면, 미디어에 의해 선전되는 소문은 모든 것을 포괄하며 도시라는 위용아래 전능한 언어이다.

이야기가 퍼진다는 것은 기억할 만한 것이 퍼진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이것은 반박물관anti-museum적인 것이다. “기억은 우리를 그 장소에 얽어맨다. 그것은 사적인 것이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흥미롭지 않을 수도 있지만, 한 구역에 영혼을 부여하는 것은 결국 그 기억이다.” 영혼들이 출몰하는 장소에만 사람들은 살아갈 수 있다. 이 때문에 판옵티콘의 체계는 뒤집힌다.

장소는 조각 난 것들이며, 내부로 돌아드는 역사이고, 남들은 읽을 수 없는 과거이며, 펼칠 수는 있지만 이야기처럼 보따리 안에 축적된 시간이며(수수께기 같은 상태로 남아 있는), 육체의 고통과 기쁨 속에 감싸인 상징화이다. 나는 여기서는 기분이 좋다.” 언어 속에서는 거의 표현되지 않지만, 어느덧 지나가는 희미한 불빛처럼 나타나는 행복well-being, 그것이 공간적 실천이다.

[출처] Michel de Certeau 'Walking in the City' |작성자 박진호

참고 : Facebook에서 인용 – Yumi Kang, 한예종 미술이론과

 

신세대미술에대해 쓰자니

 서태지, 압구정동, 오렌지족에서 시작해

 삐삐, 하이텔, 락카페, 운동권, 낑깡족,

《압구정동:유토피아/디스토피아》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키워드들이 쏟아져 나온다.

 

혹자들에게 압구정은

'부르조아의 퇴폐적 향락적 성향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더러운 곳'이었고,

누군가에게는

'부모잘만나 잘사는 빌어먹을 어린것들이 성적으로 문란하게 살아가는 말세의 단편'이었으며

누군가에게는 '신천지' '유행의 최첨단'이었다.

누군가에게는 '비가오면 가야하는 곳'이었고,

또 누군가에게는 '유토피아인지 디스토피아인지' 모르겠지만 '키치가 넘쳐나는 가짜세상'이었다.

 

그러나 그곳은 진짜세상이었다.

방문자들에게 그곳이 어떻게 보였는지는 모르지만, 중고등학생시절의 내가 떡볶이를 사먹거나, 방과후 버스를 기다리거나, 수업에 필요한 물건을 사는 곳이기도 했고,

 

친구집에 가는 길이자, 고등학교 동아리 모임을 하는 곳이었고, 산보자가 되어 누릴 수 있는 도시의 전부이기도 했다.

 

우리는 방문객을 바라보며 낄낄거렸다.

한껏 이상한 바지와 셔츠를 차려입고

 배꼽티에 생머리 휘날리는 날티나는 여자를 꼬시는 누가봐도 압구정인이 아닌 대학생 언니오빠들을 바라보며 촌스럽다고 낄낄댔고,

 

연예인을 보겠다며 길거리에 죽치고 앉아있는 한 무리의 소녀들을 바라보며

 저것들은 지 아부지가 지들 먹여살리려고 출장갔다와도 공항에 안나가는 것들이 여기서 이러고 있다고 혀를찼다.

 

우리에게 압구정은 생활의 공간이자

 캠프의 공간이었다.

맞다. 그곳은 캠프의 공간이었다.

 

압구정 처음 와 보는마냥

 차려입고 돌아다니는 사람을 비웃기라도 하듯

 차라리 초록색 체육복에 쓰레빠를 신고 돌아다녔다.

이곳이 우리의 영역임을 과시라도 하듯

 당신의 유토피아 혹은 디스토피아가

 우리에겐 생활의 공간임을 거들먹거렸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방문자들이 말하는 페스티브한 공간이 아니었다.

압구정동은

 우리에겐 진짜 삶의 공간이었다.

 

출근을 하던 친구의 아버지들이

 어느날 갑자기 돌아올 수 없게 된

 죽음의 공간이었고,

그들의 아버지를 위한 한 송이 꽃을 사는 공간이기도 했다.

 

1990년대 서울의 20대는,

그리고 기성세대는

 왜 그토록 압구정에 미쳤던걸까.

재미있는 부분이긴 하다.

 

그러나 그곳에

 그들이 말하는 수많은 문제들이

 정말 존재했는가는 다른 이야기이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과

 그곳에 머물러 가는 사람들은

 너무도 달랐고,

어찌보면 기사속의 이야기는 우리에겐 소설과도 같아서 웃음이 날 정도였다.

 

물론 그 공간속을 살던 이십대의 이야기는 잘 모르지만,

건너건너 친구의 언니나 오빠들의 이야기밖에는 모르지만,

압구정은 웃기는 동네였다.

지금은 다 죽어버린 고스트타운이라도.

 

어쩌면 모두가 관심을 끄고 난

 이제부터가

 내가 살았던 그 압구정의 재발견이 이루어질 때가 아닐까 한다.

 

나는 압구정을 좋아한다.

그곳이 어떤 곳이건 간에.

 


 

어린아이와 장소의 은유 Childhood and metaphors of places

 

주체성은 개체를 실존으로 구축하고 거기 있는 것’, 즉 현존재Dasein로 만든 부재와 이미 연결되어 있다. 거기 있는 존재being-there는 오직 공간적 실천 안에서만, 즉 무엇인가 다른 것으로 움직이는 방식으로만 작동한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결정적이고 원초적인 경험, 즉 어린아이가 엄마의 몸으로부터 분화된 경험이 다양한 은유를 통해 반복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프로이트가 18개월 된 손자의 실타래 놀이를 연구한 것. 실타래를 던지면서 저기!’라고 했고, 실타래에 감긴 줄을 끌어당기면서 반기며 여기da!’라고 소리쳤다. 엄마의 몸과 분리된 과정을 기억하는 것. 이 조작은 원초적인 공간적 구조이다.
거울 앞에 선 어린아이가 다른 것(아이가 자기 자신과 동일시하는 이미지 그것)이 아닌 자기 자신(전체적으로 본 그녀 혹은 그)을 보게 되는 행위에서, 중요한 것은 존재의 법칙이자 장소의 법칙으로서 타자로의 이행을 각인하는 공간적 사취이다. 따라서, 공간을 실천하는 것은 어린 시절의 즐겁고 조용한 경험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그것은 한 장소에서 타자가 되는 것이며 또한 타자로 옮겨 가는 것이다.

공간적 실천을 결정하는 유아시절의 경험은 계획된 도시 안에 은유적인혹은 움직이는 도시를 창조한다. 칸딘스키가 꿈꾼 것처럼, “건축의 모든 규칙에 따라 세워지고 난 후, 느닷없이 모든 계산에 반항하는 힘에 의해 흔들리는 거대 도시

 

“a great city built according to all the rules of architecture and then suddenly shaken by a force that defies all calcluation.”, Kandinsky


 

참고 : 시사IN 314, 315호 별책부록 <근대문화유산 도시여행>

 

 

 

참고 : 자본주의적 공간 형성에 대한 단상: 독점과 일상생활의 변화를 중심으로
강정석, 하자센터 협력기획팀, 영상원 간사 / 문화과학 2013년 봄

 

P88~90

<화차>의 차경선은 신용 문제에 따른 불법채권추심과 결부된 극단적인 경우에 속했던 것일 뿐, 본질적으로는 우리들과 별 차이가 없다. 결국 그녀와 우리들이 다를 바 없다는 뜻이다. 영화 속 그녀의 마지막 선택은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것이었다. 우리들은 어떠한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다시 말해서, 세르토가 말한 체계에 균열을 낼 수 있는 일상생활에서의 창조적 실천의 가능성은 어디서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것인가? 이는 앞으로 우리들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하고도 시급한 물음이 될 것이다.

이러한 가능성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데이비드 하비는 <희망의 공간>에서 이러한 가능성의 담지자, 저항의 주체를 반란적 건축가라는 특정한 인물을 통해 설명한다. 하비가 생각하는 건축가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건축가는 역사적으로 유토피아적 이상(특별히 공간적 형태에 관한 이념이 아닐지라도)의 생산과 추구에 깊이 관여되어 있다. 건축가는 인간적이고 심미적 상징적인 의미와 더불어 사회의 효용을 부여할 공간을 만들어간다. 건축가는 장기적인 사회적 기념물들을 형성하고 유지해 나가며, 개인과 집단의 갈망과 바램의 물질적인 형태를 부여하려고 노력한다. 그는 또한 새로운 가능성을 위한 공간, 즉 사회생활의 미래 형태를 위한 공간을 펼치기 위하여 투쟁한다.” – 데이비드 하비, <희망의 공간: 세계화, 신체, 유토피아>

 

하비는 또한 건축가는 특정한 전문가 개인이 아니라 인물임을 강조한다. 이는 우리 모두 자신을 일종의 건축가로 볼 수 있음을 의미하는 은유적 표현이다. 우리들 스스로의 운명과 행운, 그리고 환경을 스스로 건축해 나간다는 의미에서이다. 결국 그가 제시하는 반란적 건축가는 바로 우리들 스스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주체가 거시적 맥락에서 세르토가 말하는 개념 도시의 관점으로 설계하고 구획한 건조한 개발 환경에 저항할 수 있으며, 또한 미시적 관점으로 일상생활을 자본주의적으로 체화시키는 여러 세밀한 자본주의적 장치들에 균열을 낼 수 있는 주체라고 할 수 있다.

(중간 생략)

우리들 스스로가 반란적 건축가가 됨으로써 자기 주변의 환경을 바꾸고, 타인의 환경을 바꾸며, 더 나아가 모두를 위한 공공성을 추구하는 환경을 스스로 건축해야 한다. 앞서 언급했던, 자본주의적으로 주조된 아파트 단지의 상상의 공동체가 아닌, 지역과 동네, 마을에서 서로 경험을 공유하며 마음을 나누면서 만들어지는 진짜 공동체가 필요하다. 반란적 건축가가 만들어야 할 건축물은 외형적인 구조물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더욱 중요한 것은 사람과 사람이 화폐를 매개로 하지 않고 만날 수 있는 특정한 기회와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실천적 행위가 일어날 때, 우리는 자본의 거시적, 미시적 체계로부터 비로소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참고 문헌

 

Michel de Certeau, <The Practice of of Everyday Life>
박명진 외, <문화, 일상, 대중 문화에 관한 8개의 탐구>
마이크 크랭, 나이절 스리프트, <공간적 사유>
오마이뉴스,  '난곡 재개발 열매' 누가 챙겼나 원주민 재정착률 8.8% '그늘', 2006.10
Mr. Koo, Timelapse – Fantastic Seoul,  http://vimeo.com/49360706
Yumi Kang, Facebook post
시사IN 314, 315호 별책부록, <근대문화유산 도시여행>
문화과학 2013 ,  <어소시에이션과 문화자립>

 

함께 읽으면 좋을 책

 

박해천, <콘크리트 유토피아>
이 푸 투안, <공간과 장소>
볼프강 쉬베부시, <철도 여행의 역사>

 

written by 전정환 - 미셀 드 세르토 <일상 생활의 실천> 발제 - 2013 한예종 문화이론 수업

Posted by drawnote
:

 

대한건축학회 2013년 11월 특집 '공유시대의 건축' 기고문

클라이언트 위원회를 통한 사용자 중심 건축 

User Centered Design by Client Committee


전 정 환 / 다음커뮤니케이션 경영지원 유닛장

Jeon, Jeong-Hwan / Head of Business Support Unit, Daum Communications Corp. 

drawnote@gmail.com


Daum Communiations Corp. has been continuing corporate relocation to the Jeju Island for the past nine years and is soon to complete the Daum Space.2, the company’s third building in Jeju, following the Daum Global Medial Center (GMC) and the Daum Space.1. While the Space.1 is a structure which significantly reflects the symbolic message that Daum meets the Jeju Island and a strong will of the architect, the Space.2 is the outcome of designing both the substructure (building) and the superstructure (programmes) together, through the participation by and sharing among Daum employees as real users, based on their individual expertise. This paper seeks to elaborate as to how the Client Committee for the Daum Space.2 was formed, what the committee has done and what it is making as an outcome.

The methods of sharing and participation by the Space.2 Client Committee were as follows: coming up with ideas through brainwriting; creating user research reports based on interviews with the Daum empolyees stationed in Jeju who were selected based on diverse criteria; and proceeding with quantitative questionnaires on the entire group of Daum employees in Jeju. In addition, the products of those activities were utilised as criteria for design guidelines for a request for proposal (RFP) and selecting an architect. The outcomes are also being used consistently by the participants of the committee for the interior design for the Daum Space.2, designing organizational culture programmes, the CEO’s speeches for Daum executives and employees and in encouraging employees for their participation in the .2 Programme, etc.

Although the Daum Space.2 Client Committee was officially closed after its activities for four months, the collaboration between Daum employees and architects is still going on, such as a joint seminar between Daum employees and architects on the theme of the ‘Convergence of Architecture and Internet Service’, where discussions were held concerning the ‘shape of a village as a creative midtown resided by Daum employees’ and ‘the possibility of convergence between architecture and Internet Service’. Also, Daum employees in Jeju have recently formed an in-house club for house building to share and work together on their respective dreams of dream houses. These activities are all an extension of the Daum Space.2 Client Committee, which created values through ‘sharing’ and ‘participation’. Through these, I anticipate seeing a possibility of user-centered architecture and of ‘creative life designs’ through consilience and collaboration between architecture and Internet service.

201311 建築

special issue

1. 클라이언트 위원회의 시작


 ‘다양한 소리 多音’의 어울림을 지향하는 독특한 가치와 문화를 가진 인터넷기업이 9년에 걸쳐 제주로 이주 중이다. 펜션을 업무공간으로 빌려서 시작한 생활이 제주시 오등동의 GMC(Global Media Center / 200명 수용)의 건축으로 이어졌고, 제주대학교 인근 첨단과학기술단지에 스페이스닷원 (space.1 / 300명 수용)의 건축으로 이어졌다. 스페이스닷원은 2012년 대한민국 건축대상을 수상하고 해외 레드닷 디자인어워드를 수상하면서 건축사에 이름을 남겼다. 매년 수천명의 학생들과 일반인들이 스페이스닷원을 투어하기 위해 방문하고 있으며, 제주에 하나둘씩 이주하는 기업들(넥슨, 이스트 소프트, 모뉴엘 등)의 롤모델이 되고 있다.

 이쯤되면 무모한 도전으로 보였던 다음의 제주 이주와 정착은 결국 성공한 것이 아닌가. 그러나 일과 주거문화를 포함한 삶의 관점에서 이주에 완전히 성공했다고 선언하기에는 다소 찜찜한 면들이 있다. 첫째, 스페이스닷원은 사용자 중심의 건물인가 하는 의구심이 있다. 둘째, 10년이 되어가지만 제주 다음인들의 주거 문화는 아파트 중심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스페이스닷원은 Daum이 제주와 만났다는 상징적 의미와 건축가의 의지가 크게 반영된 건축물이다. 필자가 스페이스 닷원 완공을 앞두고 방문했을 때 첫 느낌은, 신성한 공간이었다. 웅장한 노출콘크리트 둥근 모서리의 소리울림은 엄숙한 종교의식에 적합한 공간으로 느껴졌다. 계단과 복도는 고개를 숙이고 정중히 지나가야만 할 것 같은 동굴같은 공간이었다. 제주의 오름의 형상과 결합하여, 다음의 핵심가치인 ‘다양함’,‘소통’, 그리고 ‘수평문화’라는 언어는 건축가에 의해서 어디서나 내려다보이는‘시선’과, 메아리처럼 연이어 반사되는 ‘소리’로 해석된 듯 했다.

 그러나, 입주 후 다음인들은 웅장한 건물 안에서 무언가 어색함을 느꼈다. 어디서든 내려다보이는 복합적 레이어는 불편한 ‘감시적 시선’으로 보였다. 울리는 소리는 활기찬 대화와 소통을 가로막는 ‘시끄러운 소리’로 들렸다. 그제서야 우리에게 필요한 ‘多音’의 소통은 다른 형태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외부에서 큰 찬사와 반향을 얻은 것에 비할 때, 이러한 내부의 반응은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멋진 새 건물에 자긍심을 가지기도 했지만, 동시에 아기자기한 우연한 만남과 정감어린 소통 공간이 있었던 이전 건물(GMC)를 그리워하는 다음인들도 적지 않았다. 건물의 주인이기보다는 객으로서 입주한 듯 했다.

 이즈음 향후 추가 이주할 또다른 300여명을 위하여 스페이스닷투(space.2)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2012년 2월). 닷원을 리뷰하고, 닷투는 우리의 방식으로 접근해보자고 했다. 인터넷 기업이 서비스를 만들 듯 건축을 해 보자는 것이 출발점이었다. 다양한 전문가들이 모여서 사용자들의 매개자가 되어 컨셉과 스토리를 만들고 쌍방향으로 ‘공유’하면서 건축을 해보자는 것이다.

 이것이 스페이스닷투 클라이언트 위원회의 출발점이었다. 4개월간의 클라이언트위원회의 결과물이 반영되어 1년 반의 시간이 지났다. 이제 스페이스닷투는 골조가 올라가고 2014년초 완공을 기다리고 있다.




그림. 클라이언트 위원회의 브레인라이팅, 2012.2



2. 클라이언트 위원회의 ‘공유’를 통한 설계


 스페이스닷투의 클라이언트는 특정인(일례로 대표이사)이 아닌 직원들 모두인 것으로 상정했다. 클라이언트 위원회는 다음인을 대표하는 다양한 전문가들과 외부의 자문위원들로 구성되어, 컨셉과 프로그램을 도출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위원회는 촉진자(facilitator) 역할을 한 필자가 다양한 분야 사람들을 초대하여 운영하는 형태로 구성했다. 각각의 전문분야의 관점을 보태어 통섭을 통해 상위 컨셉을 만듦과 동시에 자신이 분야를 위한 인사이트를 얻어가는 수평적 위원회였다.

 구성원은 각자 자발적인 관심사와 목적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되었다.[각주:1] 참여자들의 전문성은 큰 도움이 되었다. 사용자경험설계자인 이윤솔님은 다음 내부 고객의 인터뷰 및 보고서를 작성하였다. 업무 외에 개인이 가진 매니아적 지식과 경험도 큰 도움이 되었다. 전략팀의 이준노님은 판교에 땅콩집을 실제 짓고 있는 중이었으며, 평균적인 건축가 이상의 전문적 지식을 가지고 직원의 니즈에 맞는 건축적 대안을 날카롭게 제시하였다. 이렇듯, 내부/외부, 업무전문성/개인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수평적인 상태에서 서로 배우면서 컨셉과 프로그램을 만들어간 것이다.

 첫 미팅은 브레인라이팅(Brainwriting) 기법을 사용하여 진행되었다. 진행방법은 다음과 같다. 1) 각자에게 종이를 나누어준다. 2) 자신의 종이에 3분 동안 각자 건축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컨셉, 프로그램을 적는다. 3) 3분이 지나면, 자신의 종이를 오른편 사람에게 넘기고, 자신은 왼편 사람의 종이를 받는다. 4) 종이 위에 자신의 생각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한바퀴를 돌 때까지 2~3번을 반복한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모든 사람의 아이디어를 수집한 후 에는 종이를 벽에 붙인다. 각자에게 10개의 스티커를 나누어 주고, 선호하는 프로그램에 스티커를 붙여서 투표한다.

이렇게 도출된 내용들은 추후 설계를 진행하는데 중요한 시작점이 되었다.[각주:2]

 이어서 토론에서는 프로그램(어떻게 사용될 것인가)과 구조, 설비의 연계성에 대해 논의하였다. ‘게스트하우스에 단기 투숙객이 머물 것인가, 장기투숙객이 머물 것인가’를 논의하고, 이에 따라 ‘난방은 공조방식이 좋을지 온돌이 좋을지’ 논의하는 식이었다.

 위원회가 다음인 모두를 대표한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클라이언트 전체인 다음인들 1500여명(2012년 당시 제주근무자는 300여명이었으며 제주 근무자가 지속 증가하여 2014년 450여명)의 목소리의 쌍방향 ‘공유’를 위한 매개자가 되는 것이 위원회의 중요한 과제였다.

 이를 위해, 클라이언트 위원회의 사용자경험설계자(실제 다음의 서비스를 만드는 전문가)가 내부 고객인 다음인들을 대상으로 사용자리서치를 진행하였다. 리서치는 인터뷰(정성적)와 설문(정량적)으로 구성되었다. 이러한 방식은 다음에서 서비스를 만들 때 사용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인터뷰 대상자(정성적 조사)는 제주 근무자 6인을 남성/여 성, 자녀유무에 따라 다양하게 선별하여 진행하였다. 인터뷰를 통해서 프로그램 설계를 위한 내용들이 도출되었다.[각주:3] 이러한 조사 내용과 클라이언트 위원회의 논의 결과물이 RFP에 반영되었고, 설계사 선정시에 중요한 고려사항으로 활용되었다.

 설계사 선정 후에 제주 다음인들 전체를 대상으로 정량적 조사를 진행하였다(2012년 5월). 정량적 조사는 다음인들의 닷원 입주 만족도와 개선사항을 도출함과 동시에 닷투의 컨셉에 대한 동의와 의견을 구하는 공유와 소통의 방식이기도 했 다. 설문결과 도출된 내용 중 일부는 닷원의 개선에 반영하였고, 일부는 닷투의 설계에 반영하였다.[각주:4]


3. 클라이언트 위원회 결과물의 활용


 클라이언트 위원회는 4개월간의 활동으로 공식 활동을 마쳤지만, 그 결과물은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었다.


1) RFP의 설계지침 및 설계사 선정 기준으로 활용

2) 상세 프로그램 설계에 활용

- 스페이스닷투 인테리어 설계
- 한남사옥의 인큐베이션공간 인테리어 설계 - 스페이스닷투의 조직문화 프로그램 설계

3) 직원 대상 커뮤니케이션에 활용
- 스페이스닷원 입주식의 대표이사 연설 - 닷원 입주후 만족도 조사 설문에 활용

- 닷투 프로그램에 대한 이해와 참여 유도


 건축물이 하부구조라면, 건축물 위에서의 조직의 제도, 문화 등 다양한 프로그램은 상부구조로 볼 수 있다. 스페이스닷원은 ‘Daum과 제주의 만남의 상징’에 집중하다보니 Daum의 상부구조에 정확히 맞지 않는 하부구조가 만들어졌다. 즉, 토대가 상부를 온전히 지지하지 못하는 부정합이 발생하였다.

 클라이언트 위원회는 다양한 사내외 전문가들을 통해 상부 구조와 하부구조가 유기적으로 연결되게 디자인하는 작업을 했다. 따라서, 스페이스닷투에서 다음인들이 더 자연스럽게 창조적재생산을 하는 공간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것은 각 요소의 핵심 실행주체들이 참여자였고, 디자인과 실현 과정에서 다음인 전체와의 소통이 매개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닷투의 출현과 함께 닷원도 더욱 가치를 발현하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닷원과 닷투 두개를 이어서 보면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온전히 지지하면서 동시에 확장이 되므로, 닷원이 강점이 비로소 발현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닷원은 ‘Daum과 제주의 만남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닷투는 ‘창조적 협업 공간’으로 자리잡도록 할 것이며, 닷원의 외부인 방문 프로그램 기능을 더 강화할 예정이다.


4. 클라이언트 위원회, 그 이후


 클라이언트 위원회 해산 몇개월 뒤, 필자의 주최로, Daum 의 다양한 전문가들과 건축가들이 다시 모였다[각주:5] (2012년 8 월). 이날의 주제는 ‘건축과 IT서비스의 융합’이었다. 이 모임에서는 다음과 같은 주제가 논의되었다.[각주:6]


1) Daum의 제주 이주로 인해 지역 커뮤니티에 미치는 영향 

2) social space - public과 private의 중간에서
3) 다음만이 제시할 수 있는 중간지대의 마을만들기의 상

4) 마을만들기 진행방식에 관한 아이디어

5) 건축공학과 소프트웨어 공학의 상호 영향 : waterfall/UCD/agile model, open source, prefabrication, BIM(Building Information Model), Autodesk Homestyler


 올해는 제주 다음인들의 자생적인 새로운 움직임이 있다. 마당과 창고가 있는 자기만의 드림하우스를 짓기를 원하는 다음인들이 모여 스몰빌동호회를 만들었다(2013년 7월). 아파트의 편리함(편의시설, 교통, 교육 등)과 투자가치를 생각할 때 집을 짓고 사는 것은 상당한 불편함을 야기한다. DIY 문화와 인프라가 함께 가야한다. 그런데, 새로운 가치를 위해 이러한 불편함과 리스크를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다음인 집단이 나타난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집이 어떤 지역에 어떤 모습인지, 어떻게 지어야 하는지, 마을은 어땠으면 하는지를 스스로 스터디하고, 건축가를 만나고 국내외 주택협동조합도 벤치마크하고 있다.

회사에서는 이들의 움직임을 눈여겨보며, 사용자경험 전문가들과 함께 직원들을 상대로 리서치를 진행하고 있다.[각주:7] 이번의 사용자 조사는 조금 더 광범위하다. 다음인들의 ‘삶 디자인‘에 관한 것이다. 제주에서 어떤 삶을 꿈꾸며, 어떻게 살아 가고 있는지, 그것이 직원들과 그 가족들에, 회사에, 그리고 제주에 어떤 의미인지를 밝혀내는 것이 목적이며, 주거 공동체의 상하부구조를 읽어내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들이 ‘공유’를 통해 가치를 만들어온 클라이언트 위원회의 다음단계로의 도약의 서곡이 될 수 있지 않을 까. 스몰빌동호회는 직원이 주인이 되는 건축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또한, 이들이 인터넷서비스 전문가들이기에, 클라이언트 위원회에서 시작된 건축가와 인터넷서비스 전문가들의 통섭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새로운 형태의 건축, 제레미 리프 킨이 <소유의 종말>에서 이야기한 ‘모든 것의 서비스화’를 통한 재창조 또한 해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 모습은 린다 그래튼이 <일의 미래>에서 이야기한 능동적 삶이며, 리처드 플로리다가 말한 <창조도시>, <창조계급>의 구현일 것이다. 그것은 클라이언트가 자신의 역량을 활용하여 초기부터 건축가와 능동적으로 협업(Collaboration)하여 삶 의 상하부구조를 동시에 디자인하고 지속적으로 실현해나가는, ‘창조적 삶 디자인’으로 가는 길이다.


참고문헌

1. 리처드 플로리다, 신창조 계급(Creative Class) 

2. 린다 그래튼, 일의 미래
3. 알튀세르,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 

4. 제레미 리프킨, 소유의 종말

5. 미셀드세르토, 일상생활의 실천 



기고문 원본

클라이언트위원회_대한건축학회 기고문.pdf


 

스페이스닷투 단면도





스페이스닷투 완성된 모습 (2014.4.6) 

 

(사진은 다음인 권태영님이 촬영한 것입니다.)

 

중앙광장 - 중앙광장을 따라난 복도에는 화장실과 양치실(일명 '수돗가')가 위치하고 있어 우연한 만남이 발생하기 쉽게 하고 있다.

 

BIOS - 업무공간은 프로젝트별로 집중하기 좋은 공간이며, 업무공간 사이사이에 우연히 만나서 가벼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반쯤 오픈된 공간이 있다. public과 private의 중간에 위치한 socialize 공간.

 

 

공동작업장 '땀' - 다음인들과 예술가들의 활동을 기다리는 빈공간, Daum Space.2 공동작업장 '땀'. 손발을 사용할 수 있는 곳이며, 일반 회의실과는 달리, 대학 동아리처럼 문화의 축적이 가능한 곳이다.

앞으로 기술과 예술이 Collaboration을 할 공간. 차고문이 있어서 취미로 자동차나 로봇을 만들어도 입출고 가능하다.

예술가의 활동의 시작으로 4월11일 Sugata Go가 Live Painting을 할 예정이다. ( 참고 : Sugata Go : http://www.youtube.com/watch?v=-Ju7cJinH_8&feature=youtu.be ). 


 




  1. Daum 내부에서는 스페이스 하드웨어 총괄, 브랜드경험디자인, 브랜드마케팅, 사용자경험설계, 교육문화 , 전략 담당자들이 참여하였고, Daum 외부에서는 이해욱(한미파슨스 차장, CM), 이동훈(이화여대 건축과 교수)이 참여하였다. [본문으로]
  2. 스페이스닷투 프로젝트는 업무공간(닷투)과 게스트하우스, 어린이집으로 구성된다. 브레인라이팅에서 도출된 내용중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업무공간에서 의도하지 않은 만남이 일어나면 좋겠다. 2. 닷원보다 발랄한, 펑키한 느낌이었으면 좋겠다. 3. 닷원에 있는 사람들이 닷투를 방문하고 싶은 차별화된 콘텐츠가 있어야겠다. 4. 카페 분위기, 소셜의 느낌 나는 작업 공간 5. 작업공간이나 복도의 모든벽에 자유롭게 칠판처럼 쓸 수 있는 공간 6. 실리콘밸리 창고처럼 공동작업이나 예술작품을 만들 수 있는 창조적 공간 [본문으로]
  3. 사용자 인터뷰에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도출되었다(2012년 2월). 1. 제주에서의 생활은 ‘느린 걸음이 주는 에너지’다 2. 동료들과 소통할 수 있는(이야기를만들수있는) 장소에 애착형성 3. 근무직원의 업무경험에 대한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컨셉의 공간을 기대함 4. 서울 다음인과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공간을 기대함 5. 또 다른 기대감을 주는 공간이라면 조금 걸어도(도보로 5~10분) 괜찮다는 의견이 다수 6. 어린이집은 조금 떨어져 있더라도 Daum의 영향을 최소화하기를 바람 7. 자녀가 안전하고 쾌적하게 생활 할수있는 장소와 환경을 기대함 8. 게스트가편안하게 휴식할 수 있고, 시내와 멀더라도 불편이 없는 편의 시설을 기대함 9. 폭설시 대피소, 임직원 가족의 숙박 등으로 유연성있게 사용되기를 바람 10. 10대~20대 여름캠프, 신진 예술가의 작업실 등 서로의 문화와 꿈을 교류하는 공감이 되기를 바람 [본문으로]
  4. 설문 결과 일부는 닷원의 개선에 반영하였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1. 조명이 어두워 눈이 피로하다.(부분보완 : 개인 스탠드 지급) 2. 소리가 울려서 업무공간에서 대화가 어렵다.(부분보완 : 흡음장치 설치) 3. 위험한 조형물.(부분 보완: 주의문구부착) 일부는닷원구조상 반영 불가능한 것이었다. 닷투의 설계에 반영된 예는 다음과 같다. 1. 공용공간이 넓으나 개인 업무 공간이 좁다.( 업무공간 최대한 확보) 2. 조명이 어두워 눈이 피로하다.(업무에 적합한 조도 확보) 3. 전체 공간이 오픈되고 소리가 울려서 몰입, 협업이 어렵다.(프로젝트 중심으로 모듈화) 4. 동호회 활동 공간, 문화의 축적 공간 없음.(공동작업장) 5. 우연히 마주쳐 대화하기 어렵다(우연히 마주쳐 가볍게 회의할 수 있는 반쯤 오픈된 공간들) 6. 인포데스크, 수발실 등의 동선이 꼬임(위치, 크기 초기부터 고려) [본문으로]
  5. 참석자는 조재원(도시건축연구소 0_1 스튜디오 소장, 제주돌집 플로팅L), 황지은(서울시립대 건축과 교수, 모바일증강현실 프로젝트), 이동훈(이화여대 건축과 교수), 이준노(Daum 전략팀, 땅콩집 소유), 이준형(Daum 브랜드경험설계 팀장), 백인섭(Daum 마켓인사이트 팀장), 유진주(Daum 사용자경험팀)과 전수환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경영학과 교수), 신소영(예술경영학과 전문사)였다. [본문으로]
  6. 회의록 http://durl.me/5wpzqs [본문으로]
  7. 사용자경험설계자(정유진, 이윤솔, 이상희) 진행. [본문으로]
Posted by drawnote
:


UXCampSeoul 2011에서 <Life On Mixed Reality - 인터넷 서비스의 진화로 시공간 경험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를 발표한 후 몇몇 분들이 발표 슬라이드를 공개해달라고 하셨다. 발표자료는 slideshare에 올려 공개했지만 그날 열띤 Q&A와, 이 발표에 대한 레퍼런스들을 알려드려 조금이나마 이 주제와 관련된 질문을 가진 분들과 함께 하고싶은 마음에 이 포스트를 적는다



Q&A

아래 질문은 UXCampSeoul 2011에서 있었던 질의응답 중 몇개를 선별한 것이다. 그날 했던 답변에 참고가 될만한 내용을 보완해 적는다.

질문1. 가상현실이 한때 인기였던 것 같습니다. 가상현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몇년 전 가상현실세계 서비스인 Second Life가 상당한 선풍적 인기를 끌던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크게 주목받지 못합니다.
 PC 시대에는 Physical World와 Digital Virutal World 사이의 관문이 좁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양세계의 분리를 낳았습니다. 여기서 The Second Self가 강하게 등장합니다. 온라인 카페, 지식인도 가명으로 활동한다는 점에서는 근본은 Virtual Reality 커뮤니티 서비스에 가깝습니다. 온라인 게임은 대표적인 Virutal Reality이며 게이머는 게임 속에서는 영웅이지만 현실세계에서는 보잘 것 없는 자아인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저는 모바일 환경과 인터넷서비스의 진화로 Virtual Reality에서 Mixed Reality로 패러다임이 옮겨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PC의 모니터, 키보드, 마우스로만 국한되던 접점은 이제 스마트폰, 스마트TV, 스마트카, 디지털사이니지로 확대되고 있으며 센서의 장착, 대량보급은 인간오감의 Sixth Sense로의 확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SNS도 일조하고 있습니다. Twitter의 타임라인의 마력으로 낯선 사람도 가깝게, 멀리 있는 사람도 근처에 있는 것처럼 느끼게 되었으며, 굳이 실명인증을 하지 않더라도 실명 또는 예명을 쓰는 것을 선호하게 되며 온라인의 자아는 오프라인의 자아와 격리된 것이 아닌 연결되고 풍부해진 자아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Matrix의 Neo가 빨간알, 파란알의 선택의 기로에 놓였을 때 그는 Physical World와 Digital Virtual World 사이의 선택의 기로에 있었습니다. Mixed Reality의 세계에서는 두 세계 다 선택하는 것이며 두 세계와 두 자아가 온전하게 연결되고 완성되는 것을 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제 생각에는 Mixed Reality 시대에 기술, 서비스가 추구해야 할 가치이며, 켜있는(ON 되어 있는) 삶입니다.(Life On Mixed Reality)


질문2. 얼마전 AR 관련 컨퍼런스를 다녀왔는데 지금 발표자가 말하는 AR과는 사뭇 다릅니다. AR 전공자가 보면 격분할 내용인 것 같습니다.
 AR은 이미지프로세싱을 전공한 엔지니어들이 먼저 만든 말입니다. 위치기반 AR은 일본에서 아이폰의 나침반 센서를 이용한 Sekai Camera와 같은 어플을 만들면서 유행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위치기반 AR은 짝퉁이 맞습니다. 하지만 AR은 이로 인해 그 개념 자체가 진화해가고 있습니다.
 이미지프로세싱에 기반한 AR은 이미지트래킹을 통해 3D오브젝트를 증강하는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PC에서 퍼포먼스가 나는 것을 모바일 환경에서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도 관심사중에 하나죠. 이것은 스마트폰의 CPU가 Dual Core로 가고 더 개선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입니다. 그것은 순순히 기술적인 접근이며 그 자체는 아무런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저는 일부러 강연에서 Augmented Reality보다는 Mixed Reality라는 말을 많이 썼습니다. AR이 위와 같이 좁은 의미에서 쓰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이것은 시험 문제가 아니며 정해진 정답도 없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변화 상황에서 창조를 해 내며 가치를 실현하는 사람들이며 그에 따라 단어의 의미도 진화합니다. 이것은 30년 전 스티브잡스가 Xerox Palo Alto를 방문한 후 영감을 얻어 철학자, 심리학자, 디자이너, 연극학자, 엔지니어를 모아놓고 Macintosh의 GUI 개념을 만들어갈 때와 비슷합니다. 그들이 던진 질문은 드래그앤드롭을 어떻게 구현할지의 프로그래밍 기술이 아니라 그들이 정립해간 Desktop Metaphor, Agent, Direct-Manipulation 같은 개념들이었습니다. 
 Mixed Reality, Augmented Reality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술은 이미 어느정도 완성되어 있습니다. 아이폰에 초소형 나침반센서, 가속도센서가 들어가고 이것이 일반 사용자의 손에 대규모로 공급되고 앱스토어 개발자들이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을 만들어내는 순간 다른 '의미'가 세상에 드러나게 됐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그 의미가 드러날 때는 늦습니다. 그가 창조할 세계의 언어를 다룰 수 있는 리더만이 의미의 세계를 다룰 수 있습니다.
 Mixed Reality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술 관련 컨퍼런스보다는 사진의 역사나 여행의 역사, 곰브리치의 예술과 환영을 읽는 편이 더 낫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던지고 있는 리얼리티에 대한 질문은 플라톤의 이데아부터 브레히트/루카치의 리얼리즘 논쟁까지 수백년, 수천년간 던져온 질문의 응용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기술적 용어의 틀에 얽매여서는 안되며, 개념을 이해하고 창조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Dynabook을 고안해 Personal Computer 컨셉을 만든 Alan Kay의 명언을 새겨 봐야 합니다.  "The best way to predict the future is to invent it." - Alan Kay

질문3. 여행과 관광의 차이에 대한 내용 인상적이었습니다. 강연자께서는 여행과 관광 중 어떤 것을 더 좋아합니까?
 개인적으로는 여행과 관광 중 어떤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제가 여기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2011년 현재라는 컨텍스트에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가는 것입니다. 관광은 산업사회의 성장 - 도시노동자, 여가, 철도산업의 발전, 박물관, 휴양지 - 과 함께 생겨나고 흥하게 되었지만 지역의 고유의 장소성을 해체하고 획일화했습니다. 
 이것은 산업사회의 필연적인 흐름으로 여겨졌었습니다. 그러나 인터넷 기술의 발전, 스마트폰의 보급 등으로 위치기반서비스 환경이 급속도로 퍼지면서 이야기를 그 공간에 새기되 집단기억으로 남겨지고 드러나게 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작년 여름 안동에 여행을 갔다가 다음플레이스앱을 이용해 어떤 식당에서 글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몇달 뒤 현지에 사는 공무원이 그 식당에서 음식을 먹을 때 어떻게 먹으라는 답글을 남겼습니다. 다른 시간대지만 그 장소에 같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안동에 사는 현지인과 서울에 사는 여행객이 어떤 비밀스런 친밀감을 가지게 되었죠. 이것은 트위터 타임라인이 가져온 Digital Intimacy와 유사한 것입니다. 그 지방공무원은 지방의 소외감을 덜게 되고 서울의 저는 안동의 그 장소에 대해 새로운 애착을 느끼게 되어 대도시인의 소외감을 덜어낼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광주에서 벽화를 그리는 시민단체를 알고 있습니다. 이분들은 그 누구보다도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광주를 방문하는 많은 이들은 이들이 그린 벽화가 있는 장소를 알지 못합니다.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집단적인 애착을 가지고 있는 장소를 드러나게 하는 것, 사람들이 장소애를 바탕으로 공감하고 소통하고 그것들이 경험되게 할 수 있는 것, 이것을 담아내는 것이 위치기반서비스가 가야할 방향입니다.
 우리는 대도시 집중, 지역 소외, 획일화, 개인의 자존감 상실 등 여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새로운 기술에 다원적인 가치를 구현해내어 달성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장소상실에 관한 문제는 어느날 갑자기 나온 문제의식이 아닙니다. 1970년대 이-푸 투안이 <공간과 장소>에서 말했던 현대의 장소성의 상실 문제입니다. 위치기반서비스(LBS) 시대의 도래 때문인지 근 몇년 사이에 장소성에 대한 연구는 그 어느때보다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위치기반서비스를 만드는 모든 사람들은 인문지리학자가 되어야 하며, 새로운 기술적 토대 위에서 기존의 여행도 관광도 아닌 제3의 장소경험을 만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Reference

1. 발터 벤야민의 문예 이론
-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 이야기꾼과 소설가
- 사진의 작은 역사
발터벤야민의문예이론(이데아총서9)
카테고리 미분류
지은이 발터벤야민 (민음사, 2005년)
상세보기


2. 철도여행의 역사
철도여행의역사
카테고리 역사/문화 > 문화일반 > 생활사
지은이 볼프강 쉬벨부시 (궁리, 1999년)
상세보기

3. 이미지와 환상
- 제3장 여행이 관광으로 - 여행본질의 상실
이미지와환상
카테고리 정치/사회 > 사회학 > 사회문화 > 대중문화이론
지은이 다니엘 부어스틴 (사계절, 2004년)
상세보기

4. 공간과 장소
공간과장소
카테고리 기술/공학 > 건축/인테리어 > 공간디자인
지은이 이-푸 투안 (대윤, 2007년)
상세보기

5. Timeline of photography technology
http://en.wikipedia.org/wiki/Timeline_of_photography_technology

6. The Second Self
- Sherry Turkle 저
- 컴퓨터의 등장으로 사람들이 자아에 대해 변화를 겪게 된 것을 연구한 1990년대 중반의 고전.

- 가상현실 속에 또다른 자아를 만드는 사회현상이 급격히 생겨나는 시점의 연구여서 생생하다.
- 가상현실 시대를 넘어서서 Mixed Reality 시대로 가고 있는 2010년대에 시사할 점이 많다.


7. The Art of Human Computer Interaction Design
- Brenda Laurel 편집
- 1980년대 Macintosh의 탄생을 위해 철학자, 연극학자, 심리학자, 디자이너, 소프트웨어엔지니어 등이 함께 워크샵한 산출물을 모았다.

- 이들의 협력작업으로 지금의 GUI 컨셉(Desktop Metaphor, Agent, Direct-Manipulation)이 확립되었다. 앞으로 GUI 컨셉 정도로 지금까지 없던 UX 개념을 만들어갈 때에 이들의 접근법은 유효하다.

8. Brave New World of Digital Intimacy
- Clive Thomson의 New york times article, 2008
- Facebook, Twitter의 Ambient Awareness를 잘 설명한 기사

9. Computers As Theater
- Macintosh 초기 GUI 컨셉을 리드했던 그리스 희곡 전공자 Brenda Laurel의 1993년 책.
- 컴퓨터를 drama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 이 포스트나 슬라이드의 내용을 인용하실 때는 꼭 레퍼런스를 명기해주세요.
* twitter : @drawnote
Posted by drawnote
:
이 블로그에 마지막으로 포스팅한 것이 2008년 1월이니 3년만의 포스팅이다.
최근  UXCampSeoul에서 발표를 했던 계기로 발표 관련 추천도서와 Q&A를 어딘가에 기록하고 싶어졌는데, 트위터로는 불가능하므로 포스팅을 재개한다.
긴 글을 쓰는 것은 많은 시간을 소요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얼마나 자주 포스팅하게 될지는 모르겠다.
Posted by drawnote
:
The Future of the Internet Economy Conference 2008에서 발표합니다.

제목

 HCI/RIA를 통한 미래가치 창출
강연 요약

 HCI는 컴퓨터의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영향을 미친 학문이며, 웹에 있어서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페이지 기반의 웹 서비스에 있어서 HCI는 Information Architecture에 한정되어 적용이 되어 왔다. 또한, 기획자, 디자이너, 개발자간의 분업이 명확하여 단방향으로 개발 프로세스가 진행되었다.

 Web2.0 시대에 웹이 Rich Interaction화되면서 HCI의 역할이 더욱 증대하고 있다. 사용자 경험이 뛰어난 RIA를 만드는데 있어서는 기존의 단방향 개발 프로세스로는 불가능하며, 사용자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이며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따라 프로젝트팀이 유기적으로 움직여서 서비스가 진화해나가도록 해야 한다.

 Daum은 지난 1년 반 동안 이러한 사용자 중심 개발 프로세스를 통해 Ajax 기반의 RIA 어플리케이션인 한메일 Express를 개발했다. 이 개발 사례를 바탕으로 겉만 화려해진 RIA가 아닌 사용자의 니즈에 부합되는 훌륭한 RIA를 어떻게 만들 수 있으며, 이를 통해 회사와 사용자가 어떤 가치를 얻게 되는지를 살펴본다.

컨퍼런스 프로그램
 http://www.sek.co.kr/fiec2008/program.asp

발표 자료(PPT)




 

Posted by drawnote
:
10월 4일~6일 북경에서 있었던 개발자 컨퍼런스를 위해 회사내 SIGCHI 소모임에서 Creative Time(Daum에서는 업무 시간의 10%를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을 이용해 만든 tangible media를 선보였다.

Visual Instrument라고 붙인 이 프로젝트는 일반 캔커피를 손으로 이동해서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다. 각각의 캔커피는 악기, 도, 레, 미, 파, 솔, 라, 시, 도를 의미하고 웹캠으로 위치를 인식하여 음표가 악기 주변에 가까이 가면 소리가 나게 된다.

첫번째 작품이라 다소 미흡한 점도 있었고 현지의 조명 반사 등으로 latency가 생겼던 아쉬움이 있지만 나름 목적은 달성했다고 생각한다.






이 데모는 그날 컨퍼런스의 New Media Reader 세션과 연관된 것이다.
Posted by drawnote
:
UI Engineering팀 정규돈님이 4월 26일 Ajax 실전 케이스 워크샵에서 한메일2.0과 Ajax Framework에 대해 강의합니다.





Agenda
1
10:00~10:50
스프링노트에 적용한
Ajax 구현 방안 및 관련 개발 이슈 1
강규영
오픈마루 스튜디오
Coffee Break
2
11:00~11:50
스프링노트에 적용한
Ajax 구현 방안 및 관련 개발 이슈 2
강규영
오픈마루 스튜디오
Lunch Break
3
13:30~14:20
한메일2.0에 쓰인 Ajax 개발 프로세스
  • 1. 기획
  • Google에는 기획자가 없다더라.
  • 바뀌고 있는 프로젝트 프로세스
  • 2. 프로토타이핑(Prototyping)
  • 올바른 프로토타이핑
  • 한메일2.0에 쓰인 프로토타이핑
  • 3. 사용성테스트(Usability Test)
  • Ajax 의 진정한 의미는?
  • 사용자를 위한 Ajax
  • 4. 설계(Design)
  • 웹 개발 =? Ajax 개발
  • 개발자에게 요구되어 지는 것
  • Javascript를 OOP로 사용하자.
  • 프레임워크의 필요성
  • Sparrow 프레임워크 소개
  • 5. 구현(Implementation)
  • Ajax 개발 뒷편의 이야기
  • 아직도  쓰니?
  • DOM이냐 innerHTML이냐
  • Javascript 에서 HTML 걷어내기
  • 6. 테스트/배포(Test/Deploy)
  • 배포시 준비사항
  • 영원한 숙제 테스트
정규돈
다음커뮤니케이션
Coffee Break
4
14:30~15:20
한메일2.0 개발 이슈
  • 1.개발 환경
  • Firebug 없인 개발 못해
  • Ruby냐 Java냐
  • 2. 나는 UI 개발자인가 서버 개발자인가
  • 3. Cross Browsing
  • 4. Ajax 성능튜닝
  • setTimeout
  • Gzip
  • Javascript 합치기
  • Javascript 캐슁하기
  • 5. Ajax 보안
  • Javascript Obfuscator??
  • Javascript는 누구나 조작할 수 있다.
  • 6. Beyond Ajax
  • Ajax가 일으킨 또다른 웹의 혁명
정규돈
다음커뮤니케이션
Coffee Break
5
15:30~16:20
위자드닷컴에 적용한
Ajax 구현 방안 및 관련 개발 이슈 1
김현철 선임, 남철우 선임
위자드웍스
Coffee Break
6
16:30~17:20
위자드닷컴에 적용한
Ajax 구현 방안 및 관련 개발 이슈 2
김현철 선임, 남철우 선임
위자드웍스

Posted by drawnote
:
현재 터치스크린은 현재 은행 입출금기 등 제한된 용도로 사용되고 있고, 위치 이동과 클릭 같이 마우스와 동일한 기능을 하고 있다. 그런데 멀티 터치 스크린이 가능하다면 아주 놀라운 새롭고 직관적인 인터페이스가 가능해진다.

언젠가 이러한 인터페이스가 널리 쓰이게 될 것 같다. [각주:1]

우리가 지금 익숙하게 쓰고 있는 마우스가 1968년 제록스에서 만들어졌고, 16년 뒤인 1984년 발표된 매킨토시에서 처음 대중화되었음을 생각할 때 멀티 터치 스크린도 10여년 뒤에나 대중화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파급력은 마우스만큼 굉장할 수 있다. 아마도 그 때쯤이면, 많은게 달라져 있을 것이다. 10년이면, 긴 것 같지만 그렇게 길지 않을 수도 있다. 특히, 포털 업계는 새로운 UX혁명을 예의 주시해야 할 것이다.

실제 서비스에서 멀티 터치 스크린 인터페이스를 제공하지는 않지만 네이버 블로그 시즌2가 광고에서 이 같은 컨셉을 볼 수 있다.

SIGRAPH2006에서 발표되었던 Multi Touch Screen 데모.

더 상세한 자료는 http://multi-touchscreen.com/ 에 있습니다.
  1. 2009.3.8 덧붙임 : 이 글을 썼을 때가 2007년 초. 불과 몇개월 뒤에 아이폰에 멀티터치가 전격적으로 채택됐으니 되돌아보면 널리 쓰이기 직전의 상황이었네요:-)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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